잠못이룬 밤의 오스카의 겨을 애상(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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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선생님, 지하철 홍제역 이방인 –
그는 초겨울인데도 좀 얇은 듯한 가을 양복을 걸치고 있었다. 구두 뒷축은 많이 닳아 있었고, 구두 코에는 먼지가 잔뜩 끼어 있어 현재 그의 삶이 고단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는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어울려 조촐하게 술 파티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라면사리를 넣고 끓인 김치국을 안주 삼아 막 파티를 시작하려는데, 방문이 확 열렸다.
“동작, 그만. 그대로 두고 모두 자리에서 일어선다. 실시! 짜식들 동작 봐라.”
송인상 선생님이셨다. 시험이 끝나면 학생들의 일탈을 감시하기 위해 선생님들이 학교주변 자취방을 순찰하는 전통이 있었는데, 신입생이던 우리는 아직 모르고 있다 당한 것이다.
송인상 선생님은 20대 후반의 윤리담당 이었다. 사범대학을 졸업하고 ROTC장교로 해병대 전역한 후 바로 우리 학교로 부임해 오신 초짜 선생님이셨다. 훤칠한 키에 다부진 체격, 잘생긴 얼굴 등 결혼했다는 것을 빼고는 뭐하나 빠질 것 없는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남학생들의 우상이었고, 모든 여학생들 마음을 설레게 만든 훈남이었다.
“어린 놈들이 벌써부터 술파티냐.” 하시면서 우리들 바지 주머니, 양말속 발목, 이불속, 책꽂이, 서랍 등을 천천히 그러나 매가 토끼를 낚아 채듯 민첩하게 하나 하나 체크하기 시작하셨다.
“그래도 다행이군. 아직, 담배는 안피운다 이거지, OK. 다들 이리와봐. 이거 우리 집사람이 담근 건데, 아주 맛있게 익었다.”
좀 전 상황은 너무나 순식간에 닥친 일이라서 우리 중 누구도 선생님이 가지고 온 물건을 눈치 챈 사람이 없었다. 잘익은 열무김치 한 통과 아직도 뜨끈한 밥이 들어 있는 밥통을 함께 보자기에 싸서 뒷짐으로 들고 오셨던 모양인데, 예상치 못했던 상황 이었던 지 가만히 방문 옆에 두셨던 모양이다.
“이런 영양가 없는 라면국물에 깡소주 마시면 골로 가는 거야. 교육자로서 내가 할 짓은 아니다만, 맛베기로 딱 한 잔 씩만 하는거다. 오늘 이 자리에 있었던 일은 싸나이덜 끼리 비밀이다. 알았제“
식사를 마치고, 가시면서 너무 늦께 까지 놀지 말고 일찍 각자 집으로 돌아가서 푹 자라고 하시면서 다음 범인들 잡으로 총총히 사라지셨다.
3학년이 돼면서 송인상 선생님을 담임선생님으로 만나게 됐다. 속으로 기쁘기도 했지만, 걱정이 되기도 했다. 예전과 달리 공부에 관심이 사라진 상태였기 때문에 선생님이 내 사생활로 파고 드는 게 부담스러웠다.
시간이 흘러, 3학년 2학기도 거의 끝나 가고 있던 85년 11월 중순 어느날, 학력고사를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선생님께선 수업지도 중 이시던 수학선생님께 손짓해 잠깐 교실에 들어오시더니 나를 불러 내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단다. 빨리 집에 가봐야 겠다.”

난 어떤 감정의 요동도 없었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할 무렵부터 아버지는 뇌졸증으로 쓰러져 반신불수 상태로 방에 누워만 계셨기 때문에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것에 대비해 가족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터였다. 단지, 시기가 왜 하필 지금이지 하는 정도가 나의 불만이라면 불만이었다.
아버지 장례식을 마치고, 학교에 복귀해 목포에서 학력고사를 치르고는 일주일 정도 학교에 더 있다가 서울로 올라와 버렸다.
답답한 가정환경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활에 대한 갈망으로 목말라 있던 터라 뒷 수습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무작정 서울행 기차에 올라탔던 것이다.
그후 내가 송인상 선생님을 다시 찾아뵌 것은 7,8개월이 흐른 다음해 여름 방학때 쯤 인것 같다. 그 날 교정은 한산했다.
교무실 입구에서 선뜻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 머뭇 하고 있는데, 나오시던 어떤 선생님이 큰 소리로 아는체를 하셨다. 때문에 교무실안에 계신 다른 몇 몇 선생님들이 내가 있는 입구 쪽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상황이 돼버렸다.
송인상 선생님도 어떤 학생을 상담하시던 중 나를 발견하시고는 교무실 입구쪽으로 빠르게 오셔서는 반갑게 악수를 청하셨다.
“잘왔다. 어서와라.”
“선생님 죄송합니다. 인사도 못드리고 학교를 떠났버려서, 졸업식도 참석 못하고…”
선생님은 아무 말없이 한 동안 책상위 책꽂이에 꽃힌 출석부만을 응시하셨다.
그리고나서 서랍 맨 밑칸에서 주섬 주섬 뭔가를 찾아 꺼내시더니 내 앞 책상 위에
탁 올려 놓으셨다.
“네 꺼다. 앨범과 졸업장. 네 친구 편에 들려 보낼까 도 생각했다만, 네가 곧 돌아 올거라 생각하고 보관하고 있었다. 시험 끝나자 바로 서울로 도망쳤다는 소릴 듣고 너한테 너무 실망했지만, 그래도 졸업식장엔 나타날 줄 알았는데. . .
그 날로 로부터 세월이 아주 많이 흘렀다. 나도 가장의 무게가 느껴지는 40대 초반의 중년으로 접어들고 있을 때 쯤이었다.
그 날은 종로 3가역에서 3호선으로 갈아타자 마자 운좋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머리를 전철 창문에 기댄 채 피로를 달래기 위해 잠을 청하고 있었다.
역과 역사이 기차문이 열릴 때 마다 수 많은 사람들이 내리고 타기를 반복 했다. 생활 잡화를 취급하는 상인들은 손수레를 끌고 오가며 사람들 의사 따윈 묻지도 않고 자기들 삶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자신들이 팔아야 할 물건이면 무엇이든지 자고있는 사람들 무릎에다 놓고 가기도 하고, 신문이나 책을 읽고있는 사람들 코 앞에 쑥 들이밀기도 하며 삶을 악착같이 살아내고 있는 광경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일상적인 그런 상황에 다소 어울리지 않는 중년의 한 사내가 어느 역에선가 탑승해 나와 같은 칸에 타고 있었다는 것이 여느때와는 좀 다른 상황이었다.
180 약간 안돼 보이는 훠칠한 키에 갸름한 턱선, 매끈하고 날렵한 콧날,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강인한 눈매를 가진 잘생긴 중년 남자였지만, 피부는 거칠었고, 한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갈라 졌으며, 허벅지 존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헐렁한 상태의 양복 바지를 허리에 걸치고 있었다. 원래부터 그런 헐렁한 바지가 아니라, 힘든 삶의 여정을 거치며 근육들이 상실됐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구두 뒷축은 많이 닳아 있었고, 구두 볼에는 먼지가 잔뜩 끼어 있는 것도 현재 그의 삶이 고단하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낯이 익어. 어디서 봤더라.”
난 눈을 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시 눈을 떴을 땐, 그는 저 앞쪽 손님을 상대로 조금 전과 같이 어설프게 제품 사용설명서를 고딕체로 낭독하고 있었다.
난 천천히 일어나 그가 있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는 그가 가던 길을 멈추고 내쪽으로 되돌아 올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후 그 는 왼손엔 샘플로 꺼내든 나일론 양말 한 켤레를, 오른 손엔 양말박스가 실린 손수레를 끌고서 내쪽으로 기우뚱 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1초, 2초. 3초.
나와 눈이 마주친 순간, 그는 전율하며 오던 길을 멈추고 움찔했다. 얼굴 근육이 경련을 일으키는 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그 뒤로 한 발짝 떨어진 곳에서 잠시 기다렸다. 전차가 서서히 속도를 줄이고 멈추는가 싶더니 스르륵 문이 열렸다. 홍제역이었다.
플렛폼에 도착한 전차는 쓰레기차가 오물을 토해내듯 승객들을 쏟아냈다. 쏟아져 나가는 승객들 틈에 끼어 그도 황급히 빠져나갔다.
나도 밀려드는 승객들을 밀치며 사라진 그를 찾아 이리 저리 둘러보며 한참을 찾았다.
전철에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어디론가 빠져나가자 일순간 한산해진 플렛폼 나무 벤치에서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는, 한 낯선 이방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를 발견했지만 멀리서 지켜볼 뿐 더 이상 접근할 수가 없었다. 조금 전 분명 나를 피해 사라졌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참을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플렛폼 벤치에 앉아있던 그가 고개를 드는가 싶더니 허공에 대고 깊은 한숨을 몇 차례 내뿜기를 반복했다.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삶의 무게 때문이었을 까, 그는 다시 얼굴을 발 밑 깊숙히 떨어뜨린 채 주인에게서 버려진 석고상 처럼 한동안 그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띠리리링 띠리리링~
멀리서 전차가 들어오는 신호음이 들리자, 그는 힘겹게 양말박스 손수레를 챙겨서 노란 대기선 앞에 서서 잠시 기다리더니, 도착한 전차에 힘없이 올라탔다.
그가 탄 전차는 나를 홍제역 플렛폼에 남겨 둔 채 서서히 속도를 높이더니 이내 꼬리를 감추고 사라졌다.
한 동안 여러 친구들을 통해 송인상 선생님 소식을 수소문해 봤지만 정확히 아는 친구들은 없었다. 오래 전 학교를 그만뒀고, 그 사이 사모님께서 많이 아프셨다는 것 정도만 알수 있었다.
내 나이도 이제 10년 전 홍제역에서 마주쳤을 당시의 선생님의 나이가 됐다. 당시 그가 짊어진 삶의 무게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어서인지 요즘 더욱 더 선생님이 그립다.
#오스카하우스 #ValueCode #밸류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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