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못이루는 밤, 오스카의 겨울 애상(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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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능, 대입학력고사, 그리고 어머니 –
아들의 흔적을 찿을 수 없는 텅빈 차취방 문턱에 걸터 앉아 머리를 파묻고 잠들어 있는 초로의 발 밑엔 쌀, 김치, 감, 고구마 등을 싸온 봇짐들이 줄줄이…
늦가을 나무는 몸에 있던 잎사귀들을 떼어내고 월동준비에 분주하다. 낙엽은 나무 밑 등을 덮어 겨울 추위를 견디게 하다 봄이 되면 자기 몸을 썩혀 나무 뿌리에 양분으로 흡수된다. 나무와 낙엽이 이처럼 순환하면서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처럼 사람 사는 세상도 마찬 가지다. 다시 수능 계절이 돌아왔다.
올해 수능 응시생은 약 59만 명 이라 한다. 이중 77%인 45만명 만이 대학에 들어가고, 나머지 14만명은 낙방이다. 일부는 취업 전선에 뛰어들 것이고, 또 일부는 재수하거나 백수가 되거나 할 것이다. 이렇게 수능은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떠날 준비를 하게 만드는 첫 통과의례가 되는 것이다.
우리 집 큰 딸도 내일 수능 시험을 본다. 본인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큰 딸을 떠나 보낼 시점이 조금 더 가까이 왔다는 게 느껴져 마음 허전하다.
30 여년 전, 내 부모님은 자식의 대입시험을 어떤 심정으로 치렀을 지 궁금해 진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어머니 애 간장 녹인 사실에 부끄럽고, 대학 입시 앞둔 자녀 키우는 부모가 되고서야 내 부모님 마음을 이해 하게 된 것은 만시지탄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자취를 시작했다. 자취 첫 날 밤, 난 새벽까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로운 환경이 낯설었고, 이제 부터는 혼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집에 가는 회수가 점점 줄어 들었다. 1학년 초에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집에 다녀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2주에 한번, 한 달에 한 번 꼴이 됐다. 쌀은 한 번에 한 달 분량을 가져 와도 됐지만, 김치가 문제였다. 한꺼번에 많이 가져 오면,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라 쉬어터져 먹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2학년에 올라와서는 집에 가는 빈도가 더 줄었다. 2학기 겨울방학 때는 아예 집에 가지 않고 친구 집을 전전하며 지내고 있었다. 내 자취 방은 이제 더 이상 사람 살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한 겨울임에도 방에 연탄 불을 넣지 않은지 오래여서 콘크리트 바닥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 들었다. 다만 한 가지 12월 하순인데도 아직은 살얼음만 살짝 어는 정도 여서 방바닥에 깔려 있는 고무 호스가 동파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이 시작된 지 한 일주일 정도가 지난 84년 12월 말 어느 날 이었다. 오전부터 추적 추적 내리던 비는 오후 들어 기온이 내려가면서 짓눈깨비로 변했고 늦은 오후가 되면서 부터는 함박눈이 돼 내리기 시작했다. 난, 주인 집 아주머니가 큰 아들 집으로 떠나면서 했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너, 작년 처럼 또 보일러 냉파시키면, 방 뺄 각오 해라.”

가까운 동네 친구 집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내고 있던 나는, 서둘러 자취 방으로 돌아와야 했다. 오면서도 연탄을 어떻게 구할 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인집 부엌에서 한장 쎄비까, 아니면 후배 놈 부엌에서 쎄비까’ 고민하면서 페인트가 벗겨져 군데 군데 갈색 상처가 나 있는 녹색 철대문을 밀고 마당 안으로 들어섰다. 오래된 철대문은 쪽문과 본체 사이에 난 틈이 그새 얼어 붙었는지 끼익 끼익 추워 죽겠단 소릴 냈다.
마당으로 들어 서면 정면에 주인이 사는 본채가 있고, 후배 놈 자취 방은 방 두개에 부억이 각각 따로 붙어 있는 왼쪽 별채에 있었다. 후배 놈 자취방 부엌문은 안에 누가 있거나 없거나 상관 없이 항상 굳게 잠겨 있었는데, 그 것은 부엌에 근처 배고픈 늑대들이 훔쳐갈 쌀,김치,연탄 등이 들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이기도 했다.
내 자취 방은 주인이 사는 본체 오른 편에 있었다. 취사만 가능한 연탄 아궁이 하나에 작은 찬장 하나를 간신히 배치할 수 있는 좁고 어둠 컴컴한 부엌이 딸려 있는 방이었다.
‘내 방에 형광등이 켜져 있네. 이상하다. 큰 아들 집에 다니러 간다던 주인 아주머니가 벌써 돌아온 건가? 아궁이에 연탄불 안 땐 지 일주일도 넘었는데, 혹시 보일러 터졌으면 어쩌지? 아이씨, 큰일 났네.’
앞마당을 가로 질러 본체 오른편에 붙어 있는 내 자취방을 향해 내달렸다.
헉, 아무도 없는 빈집, 세상은 초겨울 어둠에 묻혀가고 있는데, 피로에 지친 촌부가 차취방 문턱에 걸터앉아 머리를 숙인체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걸터 앉은 발 밑 오른 쪽으론 음식물 봇짐들이 바리 바리 놓여 있었다. 쌀포대, 김치통, 감포대, 고구마…
낡은 스웨터에 빗 바랜 빨간색 나일론 목도리를 둘렀고, 털신 밖으로 나온 버선목은 비에 젖어 얼어붙어 있어서 그속에 박혀 있는 발가락은 이미 얼름이 된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맑은 날 자전거로도 한 시간은 족히 걸릴 먼 길을, 비오고 눈오는 궂은 날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오후 내내 그 먼 길을 걸어서 온 것이다. 겨우 도착했지만 텅 빈 차가운 자취방 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 아들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가 없었다. 어머니는 아들방에는 들어 가지도 못한 채, 피곤에 지쳐 방문턱에 앉아 그 대로 잠들어 있는 것이었다.
“엄마, 여기서 뭐하고 있어? 언제 부터 여기 있었던 것야? 연락이라도 하고 와야지.”
연락할 길이 없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난, 일부러 또 에먼 소릴 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침침한 눈으로 자기 앞에 서있는 물체를 잠시 바라 보다가 이내 아들임을 알아보셨다. 안도감에 그동안 억눌러 왔던 설움이 복받지셨는지 깊게 패인 주름이 보이지 않을 만큼 얼굴을 찡그리며, 마른 침 자국이 하얗게 달라붙어 있는 검푸른 입술을 비틀면서 소리도 내지 못한 채 통곡하기 시작하셨다.
허리를 구부린 채 방문턱에서 일어나 내 쪽으로 한발짝 다가 서시더니, 고릴라 손을 내밀어 내 옷에 붙은 눈송이를 털기도 하고, 거친 손바닥으로 내 볼을 어루만지기도 하시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다.
내 고등학교 시절 어머니 애간장 녹인 이런 사건이 있은 지 30여년도 더 지난, 2018년 11월 14일 수능을 이틀 앞둔 아침, 큰 딸이 내게 말했다.
“아빠, 수능합격시개 사줘.”
“응! 너, 손목시개 있잖아?”
“그게 아니고, 숫자 써진 시개가 필요해. 시험시간 체크 해야 돼서 그래.”
“알았어. 근데, 그 거 어디서 사는 거야?”
“문방구 가서 사면돼. 제일 싼거로 사.”
난, 오늘 문방구에서 수능합격시개를 샀다. 딸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를 기원하면서.
이제 수능이 끝나면, 큰 딸은 내 곁을 떠나 기숙사로 들어갈 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1주일에 한 번 꼴로 집에 다녀갈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서 한 달에 한 번, 두 달에 한 번 꼴로 다녀갈 지도 모르겠다. 대학졸업 후 취직 도 하고 시집을 가면, 그렇게 내 곁을 떠나 독립하게 될 것이다. 자연의 섭리를 따라 낙엽이 나무를 떠나 자연으로 되돌아 가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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