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의 겨울 애상(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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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유전; 인생사 돌고 도는 것’

오사카발 마지막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착륙한 시각은 밤 9시 반. 벌써 2시간이나 지났다. 이제 더 이상 출구로 빠져 나오는 승객도 없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난 김포공항사무실에서 빌린 항공사 직원용 보안패스를 경비에게 살짝 보여주고 세관검색대를 통과해 수하물집하소를 향해 뛰었다. 수하물 집하소 이곳 저곳을 둘러 봤지만 그 곳 어디에도 아내는 보이지 않았다.
 
한 참을 수하물 집하소와 세관검색대를 왔다 갔다 뛰어다닌 끝에 터미널 오른 쪽 끝에 있는 세관사무실 입구에 감색 원피스를 입은 젊은 여자가 유모차를 옆에 세워 두고 뭔가를 설명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젊은 여자는 책상 위에 여행 용 가방을 열어 둔 채로 깍두기 머리를 한 중년의 세관원을 상대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난 가까이 다가갔다.
 
세관원은 여행용 가방에서 꺼냈을 소니 캠코더를 오른 손에 들고서 이곳 저곳을 세밀하게 확인하고 있었고, 아내는 손짓 발짓을 해가며 서툰 한국말로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난 그 곳에 도착해서도 분위기 파악을 위해 한참을 그냥 지켜보고 서있었다. 돌아가는 상황이 대충 파악됐다.
 
“안녕하세요? 제가 이 사람 남편인데요. 그 캠코더 새거 아닙니다. 일본 주재원으로 있을 때 산겁니다. 제가 먼저 귀국하고 집사람은 애가 너무 어려서 비행기를 탈 수 없었기 때문에 오사카 친정집에 좀 더 머물다 이번에 귀국하면서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내가 나서서 아무리 설명을 해봐도 세관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주위를 휠끗 처다보기도 하고 비웃는 듯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뭔가를 암시하는 듯도 한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계속 얘기해 봐야 오늘은 결론 않나니 일단 이곳에 보관해 두시고, 집에 가셔서 영수증 갖고와 찾아가세요. 영수증 없으면 동일 제품 구매가의 8% 정도를 관세로 납부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20년 전 보다 크기는 훨씬 작아졌지만 성능은 월등히 개선된 소니 캠코더

세관원의 이 말은 한껏 압축돼 있는 내 가슴속 압력밥솥 스팀벨을 옆으로 툭 건드렸다. 그는 나이 어린 항공사직원이 세관 공무원에게 대든다며 소속이 어디냐? 이름이 뭐냐? 며 오히려 큰소리로 취조하듯 되물었는데, 이 말은 내 압력밥솥 뚜껑이 열려 폭발하게 만들어버렸다.

 “나요? ㅇㅇㅇ항공 직원입니다. 쓰던 물건을 이삿짐으로 가지고 들어오는데 무슨 근거로 관세를 내라는 겁니까? 내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국민이 있고, 항공사가 있어서 당신 같은 세관공무원이 여기서 월급 받고 사는 것 아닙니까? 도대체 지금이 어느 시댄 데 공무원이 국민 위에 군림하려 듭니까?”
 
나도 질세라 앞뒤 안가리고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질러버렸다. 곤히 자고 있던 100일 갖 지난 간난애가 시끄러운 소리에 깨서 칭얼대기 시작했다. 상대가 생각보다 조목 조목 따지며 강하게 나오자 그 세관원은 주춤하는 기색이 보였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저녁 1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터미널 안으로 들어 온 지도 꽤 돼서 택시 승강장에 임시로 주차해 둔 차가 견인되지 않을 까 걱정되기도 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확전은 내게도 유리할 게 없었다.
“여기 있습니다. 국을 끌여먹던, 쓰레기통에 버리든, 당신 맘대로 하시오.”
난 오른 손으로 캠코더를 거칠게 집어들어 세관원의 가슴팍에 쿡 밀어 주고는 아내와 함께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와 버렸다.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내내 걱정이 됐다. 난 출근하자 마자 팀장님께 어젯밤 김포공항 소니캠코더 사건에 대해서 자세히 보고 드렸다. 팀장님은 다 듣고 나시더니 상황을 좀 지켜보자고 했다. 자리로 돌아온 나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 시선은 계속 팀장님 행동에 고정돼 있었다.
 
팀장님은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는 동안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전화를 끊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상무님 방으로 들어가셨다. 올것이 왔구나. 아이씨!
 
한 참만에 상무님 방에서 나온 팀장님은 또 어디론가 잠깐 전화를 하셨다. 수화기를 내려놓고선 손짓으로 나를 불렀다. 팀장님과 나는 조용한 회의실을 찾아 안쪽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큰 회의용 탁자를 사이에 두고 자리를 잡았다. 팀장님 얼굴이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다.
 
“서대리, 사건이 좀 커졌다. 방금 김포세관 ㅇ주임으로 부터 전화가 와서 상무님께 보고드렸더니, 내일 사장님 모시고 세관장님 하고 골프회동 있단다. 골프회동 자리에서 불미스런 이야기가 나나오지 않도록 미리 찾아가 사죄 하라신다. ㅇ주임께 조금있다 세관장님실로 찾아 뵙겠다고 전화했으니 지금 바로 출발하자.”
내가 사죄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싫었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부장승진 평가를 목전에 둔 팀장님이 일이 커지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사정하는 바람에 따라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O주임이 사무실 입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도착하자 세관장님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소파 양쪽 자리에 각각 3명씩, 중앙 주빈석에 1명, 주빈석 맞은 편에1명 총 8명 정도가 않을 수 있는 접객용 소파가 있는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세관장은 큰 키는 아니었지만 풍체가 있고 혈색좋은 50대 중반 쯤으로 보였다. 그는 오른 다리를 왼 다리 위에 포갠체 주빈석 소파에 깊숙히 등을 파묻고 앉아 거만함을 발산하며 우리를 맞이했다.
 
40대 중반 쯤으로 보이는 세관원은 누리끼한 얼굴색에, 이마에 주름이 깊게 페여 하룻 밤 새 폭삭 늙어 버린 느낌이 들었다. 중앙 주빈석을 기준 해 오른 쪽 상석에 자리를 잡은 세관원은 점령군 장교를 보좌하는 특무상사 같았다. 허리를 약간 구부린 채 가슴을 앞으로 오무리고 두 팔을 다소곳이 양 무릎 위에 올려두고 앉아있는 폼이 마치 삼계탕 용 닭처럼 겸손 그 차체였다.
 
“제가 직원교육을 잘못 시켜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론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겠습니다.”
팀장님의 비굴한 사죄문 발표를 시작으로 우리의 항복의식은 거행됐다. 난 이 비굴한 사죄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만 있었다. 비굴한 사죄문 낭독을 끝낸 팀장님은 내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눈치를 줬다. 사죄하라는 신호였다. 난 마지못해 떠듬거렸다. “ 죄송합니다.”
 
성의 없는 나의 사죄문이 아물어 가던 그들의 심사를 긁어버렸다. 세관장은 처음의 여유있는 미소는 간데 없고, 다리미로 다린 것처럼 표정이 빳빳해졌다. “박주임 보고서 줘봐. 일이 어떻게 된 거야?”
 
세관장은 소파 왼쪽 팔걸이에 상체의 무게중심을 고정한 채 왼손에 보고서를 들고서 오른 손 엄지와 집게 손가락을 사용해 보고서를 빠르게 넘겨가며 내용을 확인해 나갔다. 보고서를 대충 훑어보고 난 후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인 한 방 이었다. “내일 오전, 내가 당신네 사장하고 골프약속이 있어요.”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팀장이 갑자기 무뤂을 꿇더니 최강 비굴 모드로 변했다. 나도 자동반사적으로 팀장님 옆에 나란히 꿇어 앉을 수 밖에 없었다. 우리들은 10분도 넘게 그렇게 꿇어 앉아서 머리를 조아려야했다. 너무나 치욕스러운 상황이었다.
어쨌든 팀장님의 과괌한 사죄로 김포공항 캠코더 사건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그 날 이후 난 한 동안 우울하게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한 무력감과, 내 직업에 대한 보잘것 없음에 좌절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사건이 있은 지 한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난 팀장님을 찾아가 사표를 냈다. 팀장님은 자신의 승진 누락이 나 때문이라 생각했는지 형식적 만류도 하지 않았다. 나의 첫 직장은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으로 5년 만에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20년 전엔 특소세 대상이던 소니 캠코더그리고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증권사를 거쳐 외국계 물류사 근무할 때였다. 관세사 자격증을 따고 막 사업을 시작한 친구가 전화를 했다.

우리 회사와 거래하고 싶다고 했다. 세관 쪽 네트워크가 좋은 분을 회장으로 영입했다며 같이 방문할테니 우리 사장님과 미팅을 주선해 달라고 해서 그러마 했다.
 
오.마이.갓, 10년 전 그 김포공항 캠코더 세관장이었다. 나는 첫눈에 알겠는데, 상대방은 아직 나를 모르는 눈치였다. 그가 아는 체 하지 않으니 나도 옛일은 가슴에 묻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날 미팅은 분위기 좋게 끝났고, 회장님은 우리 사장님과 골프 약속까지 잡고 기분 좋게 돌아갔다.
또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밥벌이 수단으로 창업을 하게 됐다. 내가 창업했다 하니 그 관세사 친구로 부터 안부전화가 왔다. 점심이나 하자며 자기 사무실로 오라 했다. 난 친구 사무실에 들른 김에 회장님방에 안부인사겸 들렀다. 차 한잔 얻어 마시며 내친 김에 한발 더 나갔다.
 
“회장님, 한번 도와주십시요. 제가 이번에 새롭게 사업 시작했습니다. 제 웹사이트에 광고를 주시면 초기 사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무슨 사업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뭐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우리 최사장하고 잘 얘기해서 진행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어쨌든 축하드립니다.”
 
역시 10년 전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김포공항 캠코더 사건을 묻어두길 잘한 것 같다. 근데 궁금하긴 하다. 그때 그 세관원에게 슬쩍 몇 만원 찔러주는 방법을 택했더라면 지금 내 인생 뭐가 좀 달라져 있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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