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의 겨울 애상(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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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본 문화 답사기 ’비데프랑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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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안방에서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어된다. 난 샤워를 하다 말고 튀어나와 전화를 받았다. 순지였다. 1년전 오사카에서 만난 재일교포 대학생 김순지씨가 김포공항에 도착했다고 연락한 것이다. 오는 방법을 어떻게 알려줄까 고민하다 그냥 택시 잡아 타고서 ‘일산이요’라고 외치라 했다. 중국집에서 요리를 시키면 된다는 데도 아내는 한사코 한국 가정식을 선보이겠다며 호기를 부리더니 금새 어디론가 사라지고 안 보인다. 어디 가까운 마트라도 간 모양이다.

일본 빵 체인점 비데프랑스(Vie De France)

1년 전 이맘 때 오사카에서 김순지씨를 알게 된 ‘비데프랑스’ 추억이 떠올랐다. 아르바이트 마지막 날 송별파티 때 순지씨는 내 게서 연락처를 받아갔다. 한국에 꼭 한 번 놀러 가겠다며 선하게 웃어 보였다.당시 한국은 외환위기에 빠져 사회 전체가 어수선했고, 개인적으로는 어머니께서 오랜 암 투병 끝에 막 돌아가신 뒤라, 몸과 맘이 많이 힘들었다. 난 휴직하고 아내의 친정이 있는 오사카로 도피 성 유학을 떠났다.

일본에 도착한 나는 은행 계좌 개설하기, 도서관 이용하기, 서점 이용하기 등 일본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최대한 빨리 습득하고 생활 일본어를 되도록 빨리 배우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우선 집안의 모든 가재 도구에 일본어를 붙여 놓고 외웠다. 시간 날 때 마다 집에서 가까운 도서관에 들러 마이크로 필름 신문 헤드라인을 쭉 훑으며 사회 경제 문화 연예계 이슈 등을 대강 파악해 나갔다.

어느 정도 일본 생활에 익숙해 지자 10월부터는 6개월 코스 국제 교류 센터에 등록했다. 학비가 50만 엔이 넘었다. 원화 가치가 바닥이던 시절이라 내 게는 더욱 더 부담되는 금액이었다. 일본 오기 전부터 일본 대학원 진학을 목표로 준비해 왔던 나는 11월에 접어들면서 일본어능력시험을 본격 공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음만 조급했지 생각 만큼 점수가 나오 질 않았다.

학교에서 배운 것만 가지고는 높은 점수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현장에서 통용되는 생활일본어를 배워야 한다고 판단해 11월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학교가 끝나고 저녁 7시부터 12시까지 오사카 지하철 덴노지역에 있는 ‘비데프랑스’라는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것이다. ‘비데프랑스’에서 처음 맡은 일은 오븐용 철판위에 붙어 있는 빵찌꺼기를 조각칼로 떼어내고 깨끗이 정리하는 작업이었다.

조각칼로 철판을 긁을 때 나는 ‘찌익 찌익’하는 소음은 내 뼛속 신경계를 타고 들어와 어금니가 시어지고 온 몸을 전율케 했다. 철판 긁히는 ‘찌익 찌익’ 소리에 괴로워 하자, 어는 날 같이 일하는 김순지라는 교포 3세 여대생이 내게 제안을 했다. 곧 신입 알바생이 들어올 것 같은데 조금만 참고 기다리면 그 때 자기가 메니져께 잘 얘기해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부탁해 보마 했다. 순지씨의 배려가 고마워서 코끝이 매웠다.

철판 긁는 일을 한 달 정도 했을 때, 난 그 일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새로 온 덩치 큰 여고생에게 그 일을 인계 했다. 대신 난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거나 쓰레기를 치우며 시간을 보냈다.11시가 넘어 손님이 끊길 즈음, 팔리고 남은 빵을 매대에서 수거해 정리하는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일본 빵체인점 비데프랑스(Vie De France) 오사카 점

매대에서 빵을 수거해 첨가물이 들어가 있지 않은 순수한 빵들을 모아 잘게 찢어서 큰 양철통에 넣고 우유와 노란 설탕을 부어 한 동안 숙성시키면 일명 곰보빵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됐다. 난 그 때 이후 한국에 돌아와서도 곰보빵은 처다 보지도 않는다.

아르바이트가 3개월째 접어들자 난 한 단계 승격됐다. 덩치 큰 여고생이 깨끗하게 정리해 쌓아 둔 철판을 가져다 펼쳐 놓고 그 위에 생지를 배열해 두는 작업을 하게된 것이다. 철판에 생지를 배열하기 위해선 냉동창고에서 각종 생지들을 찾아와야 했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하 40도가 넘는 냉동창고에 들어가기 위해선 에스키모용 오바코트를 걸치고,두툼한 장갑과 마스크, 털 모자를 눌러 써 단단히 무장하고 들어가야 했다. 한 번 들어가면 최소 3.4분 이상 걸리니 중무장하고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엇 보다 냉동창고에 들어가면 안경 알에 하얀 서리가 끼어 앞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불편했다.

‘비데 프랑스’는 이름으로 짐작할 수 있듯이 프랑스풍 빵을 추구하는 빵집이었다. 빵 이름이 전부 외래어였고 빵을 만드는 생지 또한 카다카나식 일본어 표기로 돼 있어서 외국인인 내 게는 얼른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냉동창고 안에서 필요한 생지를 최대한 빨리 찾기 위해선 요령이 필요했다. 우선 필요한 생지박스가 있는 위치를 알아야 했다. 다음은 수 많은 박스 표면에 쓰여 있는 카다카나표기를 재빨리 읽어내 필요한 생지박스를 신속하게 찾아내는 일이다.

나는 생지배열작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카다카나에 익숙치 않아 원하는 생지박스 찾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냉동창고에 들락거리는 횟수가 많아지고 몸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늘 감기를 달고 살아야 했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점점 힘들어 졌다.

안되겠다 싶었다. 비상 대책을 세워야 했다. 학교 수업이 없는 어느 주말 오전 도서관에 가서 프랑스 베이커리북을 몇 개 골랐다. 140개가 넘는 프랑스빵 모양을 일일이 수첩에 그렸다. 그리고 그 옆에 빵 이름을 적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수시로 외웠는데, 그게 효과가 있었다.

어느 날은 내가 냉장고에 들어간 지 얼마 안돼서 금방 생지를 찾아오자 일본인 메니져 마나베상이 ‘서상, 스고이!’ 하며 오른 손 엄지를 치켜세웠다. 이 일을 게기로 난 자신감이 생겼고, 마나베상 하고도 가까워 졌다.

일본 빵 체인점 비데프랑스(Vie De France) 쇼쿠라 링그

마나베상은 적당한 키에 통통하게 살집 있고 늘 싱글 벙글 웃고 다녀 사람 좋게 보였지만, 일을 가르칠 때는 무섭게 변했다. 내가 이것 저것 일을 빨리 배우자, 빵만드는 간단한 기술을 가르쳐 주기도 했다. 주말 저녁에 내게 일을 맡기고는 빨리 퇴근해 여자친구와 데이트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다 내가 사고를 쳤다. 어느 날 토요일 저녁 11시가 조금 넘어서 내게 뒷수습을 맡기고는 마나베상은 여자친구와 약속 있다며 급히 퇴근해 버렸다. 철판에 배열된 생지를 숙성기에 넣고 숙성 환경을 세팅하는 작업은 일 배운 지 한 달도 안된 아르바이트생이 혼자서 하기엔 어려운 작업이었다.

(하 편은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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