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트글)영화 택시운전사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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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나 기자의 영화마을

영화 택시운전사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
글 조한나 기자

‘2017년의 광화문 광장, 나는 그간 얼마나 많은 길을 달려왔던가! 아내가 남기고 간 어린 딸아이와 살아남기 위해 무작정 달려야했던 거리들이 떠오른다. 휘청거리는 네온사인, 낯선 이의 술 냄새, 월세를 재촉하는 날 선 집주인의 목소리…….
밀린 월세 십만 원을 벌기 위해 낯선 외국인을 태우고 무작정 광주로 향했던 80년 5월이 떠오른다. 공포스런 총성이 들려온다. 피로 물든 광장, 전쟁터로 변한 대낮의 도시에서 펼쳐진 믿지 못할 광경이 목판에 새겨진 각인처럼 나와 긴 세월을 함께했다.’

마지막 남은 동력기와도 같은 낡은 택시 하나, 그 초라한 동체 하나로 삶의 협곡을 헤쳐 나가던 택시운전사 만섭. 만섭은 1980년 5월, 자신의 낡은 택시를 몰고 화염 속 광주로 향한다.
죽은 아내가 남기고 간 금지옥엽 같은 딸아이가 그에겐 세상의 전부이다. 정치고 체제고 그런 것 따윈 관심 없다. 질서에 반항하는 목소리도 고단한 삶을 방해하는 방해꾼들의 치기일 뿐, 그저 딸아이 하나 잘 키워낼 수 있다면 이 나라도 그럭저럭 살만한 곳이라 내심 생각했다. 80년 5월, 총포와 화염으로 덮인 광주로 향하기 전까진 말이다.

만섭은 광주를 취재하러 독일에서 온 외신기자 피터를 택시에 태우고 뭣도 모른 채 전쟁터 같은 광주로 향한다. 군부의 철통같은 방어와 검문을 간신히 뚫고 우여곡절 끝에 광주에 도착한 만섭 일행. 그곳은 만섭에겐 보지도 듣지도 못했던 낯선 땅이었다. 나라 간의 전쟁도 아닌, 이념 간의 싸움도 아닌 자유와 평화를 염원하는 몸짓과 그것을 향한 칼부림, 평화를 외치는 소리와 그 소리를 시샘이라도 하는 듯한 총성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국가와 언론에 의해 철저하게 밀폐된 그곳을 직접 목도하기 전까진. 내 나라는 적어도 소중한 딸에게 자유와 희망의 미래를 줄 것만 같았던, 엄격하고 때론 무심하기 짝이 없지만 어린 마음에 마냥 기대고 싶었던 어릴 적 아버지의 품과도 같았던 곳이었다.

‘살이 베이는 듯한 시린 배신감은 언제나 순진한 자의 몫인 걸, 내가 순수하게 믿고 있었던 내 아버지의 나라는 대체 세상 그 어디로 사라진 걸까? 1980년 5월 그 찬란했던 봄날, 핏빛으로 흥건해진 이웃들의 눈빛 속으로 사라진 걸까?
그 아픈 기억의 땅을 뒤로한 채, 나는 또 한 끼의 끼니를 위해 어언 삼십 년의 세월을 달려야했다.’

역사는 몇 차례의 곤두박질과 역행을 반복한 끝에 이제 광화문 광장 한복판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날의 진실을 담론하고 있다. 세월이 흐를 만치 흐르고 통치자도 지도층도 바뀌었지만, 깊게 패인 상처는 좀처럼 아물지 않고 아픔은 가시지 않는다.

거리의 안온한 풍경은 여전히 시대의 비극을 가리기에 충분하고, 브라운관을 가득 채우는 춤들과 가벼운 웃음들은 얌전히 현실에 순응하라고 재촉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현실과 시간의 급류에 빠져 허우적대다 빠르게 망각의 강 속으로 빠져든다.
이제 다시 무엇을 꿈꾸어야 하는가?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가…….

어쩌면 그동안의 우리 대다수는 손님을 객지에 내버려 두고 혼자 도망쳐 달려온 택시운전사 같은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아픔 가득한 눈동자, 구원을 염원하는 애달픈 눈빛을 외면한 채 제 살길만을 찾아 살아온 의무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자신의 소명을 다한 택시운전사! 사랑하는 딸에게 “아빠가 손님을 두고 왔어…….”라고 말하고 광주로 핸들을 돌렸던 주인공 만섭. 우리도 그처럼 앞만 보고 달려온 걸음을 이젠 한 번쯤 멈춰야 할 때가 아닌지, 그냥 지나쳐버린 것들을 향해 핸들을 꺾어 과감히 의로운 엑셀을 밟아야 할 때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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