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의 겨울 애상(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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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뿌리를 찾아서; 이름에 얽힌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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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름 상출 꽃

무열, 오복, 오봉, 오자복. 나를 불렀던 이름 들이다.
‘무열’은 항렬에 따라 조부께서 지어주신 집안 족보에 올라 있는 이름이고, ‘오복’은 다섯째로 태어났다는 의미로 집에서 막 부르던 이름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니 출석부에 기록돼 있던 이름이 ‘오봉’이다. 학교 행정 실수로 생긴 이름인데, 초등학교 선생님들은 ‘오봉’이라 불렀고 난 ‘오복’으로 들었으며 친구들도 ‘오복’으로 불렀다.

내 이름에 얽힌 이야기를 하자면 3박4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 호적에 등재된 ‘오복’이란 이름이 어떻게 해서 초등학교 출석부에 ‘오봉’으로 바뀌어 기록된 건 지 그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45년 전 나의 OO국민학교 입학식 날 아침 담임 선생님과의 첫 대면은 이랬다. 교장선생님의 훈시가 끝나고 가슴에 항까치(손수건)를 길게 찬 어리버리 꼬맹이들만을 따로 부르는 나이 많은 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은 운동장 시멘트계단 중간쯤에 오르시더니 출석을 부르시기 시작했는데 끝내 내 이름은 불려지지 않았다. 비슷한 이름은 있었다. 선생님은 혼자 덩그러니 줄 밖에 남아있는 나를 보시더니.

“야, 넌 뭐냐? 네 이름은 뭐야?”
“서오복입니다.”
“서오봉! 아까 불렀잖아. 빨리 젤 앞으로 가서 줄서.”

늦 여름 개암나무 열매

난 그 선생님께 제 이름은 ‘서오봉’이 아니고 ‘서오복’이에요 하고 말할 용기도 없는 없는 숫기없는 꼬맹이었다. 친구들 보다 한 살 어리고 발육 상태도 좋지 않아 몸집도 작은 가난한 집 아이에 불과했다.

성인이 돼서도 내 이름에 얽힌 수난사는 계속 됐다. 대학교 4학년 2학기 모 그룹 입사 면접장에서 일어난 웃지 못할 사건이다. 지원자 4명에 면접관 4명인 4대4 면접 방식이었다. 지원자들은 다들 열심히 준비했는지 면접관들이 던진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술술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아, 저기 마지막에 있는 자네, 이름이 뭔가?”
“네, 서. 오짜. 복짜. 쓰는 어쩌고 저쩌고…”

“이 사람아, 그건 조부나 부친 이름을 남 앞에서 부를 때 쓰는 표현이지. 자기 이름을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어딨어?”

갑자기 면접장이 웃음바다로 변했다. 나는 얼굴이 화끈 거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면접이고 뭐고 그냥 그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창피해 얼굴을 들지 못하고 있는데, 그 면접관이 또 질문을 던졌다.(그룹 오너 회장이었는데 나중에 알게 됨)

“그런데, 자네 그 이름은 누가 지어 준 건가?”
“네, 조부께서 지어주셨습니다.”
“그래. 오복이 뭔지는 아는가?”
“그게, 저기.(아놔, 이건 또 뭐야. 이거 대기업 면접 맞아. 떨어졌군.)
수.부.강녕.유종명…우물 쭈물”

책에서 보고 배운대로 대충 던졌다. 그랬더니 이번엔 그 면접관은 미처 내가 말하지 못한 마지막 한 가지를 더해 화룡점정, 오복의 종류를 완성했다.

“하나 더 있네. ‘유호덕’. 덕있게 살아서 존경받는 것. 사회생활 하면서 이 마지막 것을 명심하면 조부가 지어주신 자네 이름값을 할 수 있는 거네.”

이상한 면접을 했지만 어쨌든 난 그 면접을 통과해 3개월 뒤 출근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나랑 같은 조에있던 놈이 동기모임 술자리에서 면접장에서의 그 ‘오짜복짜’ 사건을 누설하는 바람에 입사 후 한 동안 내 이름은 ‘오자복’으로 통했다.

가을 꾸지뽕나무 열매

어머니가 말기암 선고 받고 몇 차례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체력적으로 도저히 견딜수 없어서 어머니 의견을 따라 강원도 평창군의 어느 한적한 시골 요양시설에서 여름 3개월 동안을 어머니와 함께 보낸 적이 있다.

이른 저녁을 먹고 어머니와 산책하던 중, 시냇가 둑에 있는 산딸기를 발견하시더니 어머니가 갑자기 그러셨다. “너, 기억나냐? 네가 국민하교 다닐때 이 맘때 쯤인가. 네가 학교 파하고 돌아왔어야 하는데 다른 애들은 다 왔는데 너만 안 오는 거라. 아무도 네 소식을 모른다 하니 속은 타 들어가는데, 네가 땀에 젖은 얼굴로 나타난 거라. 얼마나 반갑던 지. 근디 맘과는 너를 엄청 혼냈제. 그 땐 내가 왜 그랬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야.”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는 산 넘고 들을 지나 시냇가를 몇 개씩 거쳐야 하는 곳에 있었으니 사시사철 산과 들 에는 산 열매로 넘쳐 났다. 난 이들로 배를 채우는데 정신 팔려 종종 혼자서 집에 돌아오곤 했다.

가을 포리똥나무 열매

처음에는 시냇가 둑에서 발견한 산 딸기에서 시작해 산으로 올라가 정금, 깨금(개암) 을 따 먹고, 걸리적 거리던 책보를 풀어놓고 포리똥(보리수), 꾸지뽕나무에 기어올라 그 열매들로 배를 채우고는 내려와, 아까 풀어 논 책보는 까맣게 잊어버린 채, 산길 들길을 따라 집으로 돌아오곤 했던 것이다.

그날도 늦여름 해는 늬였뉘엿 앞산 끝자락에 걸렸는데 아뿔사 책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집에 다 와서야 깨닳았다. 되돌아가 책보를 찾기란 불가능했다. 에라 모르겠다 숙제고 뭐고 집에 빨리 들어 가자. 집에서는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던 어머니는 아들을 보니 안도의 한숨도 잠시. 없어진 책보를 발견하고는 사정 없이 추궁이 이어졌다. 얼빠진 꼬맹이 아들은 잃어버린 장소가 도저히 기억나지 않는다.

가을 산속 정금 열매

어머니는 그런 나를 앞 세우고 돌아왔던 길을 차례 차례 복기 한 끝에 겨우 어느 산속 포리똥나무 밑에서 홀로 덩그러니 주인을 기다리고 있던 책보를 찾을 수 있었다. ‘밥을 굶어도 공부는 해야 한다 던 어머니의 집념’이 그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산과 들을 헤맬 용기를 가져다 주었으리라.

어머니는 내가 따 드린 산딸기를 오른 손 바닥 위에 두고 선 물끄러미 바라보고 만 계셨다. 어머니는 아마도 이 산딸기를 보면서 나와의 오래전 추억을 떠올리시는 것 같아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 졌다. 분위기를 좀 바꿔보기 위해서 난 내 이름에 얽힌 사연을 어머니께 물어다.

“엄마, 왜 아들 이름을 촌스럽게 지어가지고 평생 아들을 챙피하게 만드요?”
“네, 원래 이름은 ‘무열’이다. 육창양반(할아버지)은 이 이름을 집안 족보에 올리고는 얼마 안되서 돌아가셨지.

서너 달 뒤엔 네 할머니도 돌아가셨으니 집안에 3재가 끼었다고 난리가 났었제. 그 해 갓 돌 지난 네 이름을 호적에 올려하는데, ‘무열’이라는 이름이 안 좋다는 무당 말이 걸리더라. 그래 집에서 부르던 이름을 올린 거다. ‘오복’이 네 이름이 말년운이 좋텐다. 대성하는 이름이랴.”

사실 어머니는 외가의 아픈 손가락이었다. 어렸을 적에 심하게 앓은 감기로 인해 오른 쪽 귀가 잘 안 들리게 됐다. 나이가 들면서 차츰 왼쪽 귀도 상태가 나빠져 거의 양쪽 청력을 상실하게 됐다. 이런 저런 집안 사정 때문에 어머니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초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그러니 어머니의 일생이 평탄했을 리 없다. 내가 사물을 인식하고 말을 배우고 글을 배우고 감수성 예민했던 청소년 기를 보낼 때 목격한 내 어머니의 하루하루는 눈물과 한숨으로 뒤범벅 된 삶이었다.

“엄마, 그 동안 우리 7남매 키우면서 그래도 언제 행복한 적은 있었소?” 난 엄마가 아침마다 눈물 바람으로 동네 이 집 저 집을 오가며 돈을 꿔서 우리 7남매 키운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었는데도 결국엔 항상 우리 어머니가 잘못 들은 것으로 몰아 붙이는 동네 아줌마들의 악다구니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던 터라 어머니의 대답이 궁금하기도 했다.
“너희들 키워서 서울로 다 보내고 한 10년 동네 인심이 많이 빈했제. 그 때가 내도 어깨 좀 펴고 살았던 시절이었고. 나를 무시하던 것들도 다들 성님 성님 하며 아양 떨던 시절이었제. 네 큰 성이 싸우디 갔다와서 서울서 슈퍼함서 돈을 좀 버니께 사람들 대우가 달라지더랑께.

네가 대학에 합격하고 부터는 더 달라졌제잉. 나도 그 때 만큼 태어나서 기분 좋은 적 없었으닝께. 그 때 이름을 ‘오복’으로 호적에 올리길 잘했다 싶었제. 지금 생각해보믄 그 무당이 용하긴 했시야”

어머니는 이승에서의 65년 세월 동안 딱 10년 기 펴고 사셨다. 다시 어머니를 만나 기 전까진 이 이름을 계속 쓸 수 밖에 없다. 어머니가 내 이름을 ‘오복’을 자랑으로 알고 먼 길을 떠나셨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내 집에 오셔서 “오복아”하고 부르실 것 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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