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의 겨울 애상(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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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비밀 정원; 내 작업실’ 
(ValueCode.co.kr)

내 고향 집 뒤뜰에는 어머니의 비밀 정원이 있었다. 이 곳에는 장독대가 있었고 우물이 있었고 텃밭이 있었다. 깊은 밤 감춰 둔 소주병을 몰래 꺼내 혼자 눈물 짓기도 하셨고, 담배 연기에 세상 살이 고단함을 날려 보냈던 스트레스 해소 공간이었다.

어머니의 비밀 정원에는 내 작업장도 포함돼 있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중학교에 진학할 수 없었던 내가 방에만 쳐 박혀 지내자 장작 쌓아 두던 공간을 깨끗이 치우고 어머니가 직접 만들어 주신 나만의 놀이터 이기도 한 곳 이었다.

난 내 작업장에서 놀다 지치면 어머니 꽃밭에 물을 주며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가 하던 방식을 따라 꽃 이름을 불러주며 꽃들과 대화하는 놀이였다. 3월 봉숭아, 4월 맨드라미, 5월 작약, 6월 장미, 7월 꽈리, 8월 해바라기, 9월 들 국화…

4월 채송화

어머니가 손수 만드신 비밀 정원 꽃밭에선 이처럼 사시사철 꽃들을 피워 내고 있었다. 난 꽃 가꾸기가 끝나면 진흙 물감을 사용해 갈 붓으로 땅 바닥이나 신문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붓글씨 연습을 하기도 했다.

동네 앞뒷산을 뒤지면 칙뿌리는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칙뿌리를 캐서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한쪽 끝을 나무 망치로 잘근 으깨면 검은 칡물이 빠진다. 이것을 햇볕에 말려 하얀 가루를 털어낸 뒤 뜨거운 물에 끓이면 녹말이 분해되고 하얀 칡뿌리 수염만이 추출된다.

이 것을 잘 말려 적당한 길이로 자른 뒤 손가락 굵기의 대나무 한 쪽 끝에 빡빡하게 채우고는 대나무 표면에 유선형으로 칼집을 낸 뒤 노끈으로 단단히 묶고 칡 뿌리 수염 끝을 잘 정리해 자르면 갈 붓이 완성 된다.

5월 맨드라미

비밀 정원에서 이런 혼자만의 놀이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준 각 종 재료들은 동네 앞 뒷산에서 구했다. 어머니가 월동용 땔감을 구하러 산으로 나무 하러 갈 때면 나를 꼭 데려 가셨기 때문에 난 어머니가 나무 하는 동안 이런 재료들을 채취해 집으로 가져 오곤 했다.

어머니가 이제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나를 앞세우고 산으로 나무하러 간 목적이 노동력이 필요해서라기 보다는 산속에서 무서움을 달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어머니가 나무를 할 동안 난 옆에서 칡을 캤고, 특이한 모양의 나무 등걸을 잘라 모으기도 했다. 어떤 때는 상출 같은 약초나 난을 캐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색 고운 진흙을 퍼 담기도 했다. 어머니는 나무를 묶을 때나 다 묶은 나무 단을 옮길 때만 나를 부르셨다.

6월 작약 꽃

산에서 퍼온 여러 가지 진흙을 곱게 가루 내 물에 개어 진흙 물감을 만들어 사용했고, 찰흙으로 만들어 다양한 조각상을 만들기도 했다. 갑옷을 입고 큰 칼 옆에 찬 이순신 장군 동상을 만들었고,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를 외치고 있는 이승복 동상을 만들기도 했다.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내 작업장엔 동네 아이들 발길이 잦았다. 만들기 방학 숙제를 구하기 위해서 였는데, 난 그들이 원하는 것을 내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그들로부터 받았다. 주로 그들에겐 쓰임을 다한 중학교 교재나 참고서들 이었다.

내가 도시에서 월급쟁이 생활 하면서 아파트 베란다가 내 주말 비밀 정원이 되었다. 토요일 아침 베란다로 가서 화초에 물을 주고, 한 주간 쌓아둔 신문을 뒤적이며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거나 붓글씨 연습을 하는 나만의 휴식 공간이었다.

 

6월 맥문동 꽃  (https://blog.naver.com/value_codi/221183747770)

다만 작년 초부터 이런 나의 비밀 정원 놀이를 보는 아내의 시선이 달라져 있었던 모양인데, 내가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2017년 3월 말 어느 토요일 오전, 아내는 조용히 베란다 문을 열고 들어와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늘 그랬듯 혼자만의 놀이에 빠져 있던 나를 손짓으로 불렀다.

“OO이아빠 얘기 좀 해요… 저기,.. 음, 언제까지 이런 생활 할꺼에요?”
“내가 집에 몇 일이나 있었다고…쩝”
“그런 뜻 아닌 줄 잘 아시잖아요. 앞으로
어떻게 살거냐고 묻는 거 잖아요?”

9월 들국화

작년 2월말 몸이 아파,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집에서 요양하며 한 달 즈음 쉬고 있던 때였다. 난, 아내의 불안과 불만을 잠재울 만한 계획을 제시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럴 듯한 계획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아내가 제안했다.

“교회 어떤 집사님이 그러는데, 지금 평택에 무슨 무슨 기업에서 엄청 투자해 큰 공장을 짓고 있데요. 한 달에 수 백씩 벌 수 있는 데, 일이 하나도 힘들지 않다네. 한 6개월 정도 가서 먹고 자며 일하면 된다네요.”

난 세상물정 모르는 아내의 순진한 이 말에 또 화가 치밀어 올랐다.
“되지도 않는 소리 집어쳐. 그런 쉬운 일을 하는데 한 달에 수 백씩이나 주는 회사가 세상에 어딨어?”

한 바탕 큰 소리가 오갔고, 난 거칠게 현관문을 닫고 나와버렸다. 밤 늦게 까지 거리를 헤매다 치킨에 생맥주로 저녁을 대충 때우고는 저녁 12시가 다 돼서 들어갔다.

 

맙소사! 내 베란다 비밀 정원이 완전 쑥대밭이 돼 있었다. 그동안 써 두었던 습작들은 어디론 가 사라져 버렸고, 벼루와 먹도 파편만 남긴 채 그 행방이 묘연했다. 그 후 6개월 동안 내 비밀 정원엔 먼지만 가득 싸여가고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피자 한 판으로 특종을 건져 올렸다. 아내의 충신을 간신으로 만들어 버린 사건이었다.지난 토요일 오전, 막내가 학교에 운동하러 가지 않고 왠 일인지 지 방에 처박혀 유투브액체괴물 만들기에 빠져 있었다.

10월 꽈리 열매

“서OO, 너 오늘 토요일인데 아침 배드민턴
연습 없어?”
“응, 추워서 안가.”
“아빠랑 토스트 먹으러 갈까?”
“안가, 토스트 맛없어.”
“그럼, 피자 먹으러 가자.”

동네 피자 집에서 우리가 피자 한 판을 다 먹어갈 때 즈음 막내에게 낚시 밥을 던졌다.

“야, 서OO. 아빠 서예 도구 어디로 갔냐?
엄마가 어디로 치운 거지?” “아, 그거! 엄마가
박살 내서 쓰레기통에 버렸는뎅!”

12월 산속 상출 곷

“우~욱, 씨~”
오물 오물 입안 가득 씹던 피자맛이 확 달아나 버렸다. 어금니에 힘을 주고서 입술을 오무린 채 땅이 꺼져라 한 숨을 내 쉬는데도 막내는 유투브 액체괴물에만 정신팔려 있었다.

참, 오래전 어머니가 산에서 혼자 나무 할 때 나도 저 애처럼 딴 짓 하며 놀았었지! 그때 어머니 심정이 지금 나와 같았을 까? 아니 훨씬 외로우셨겠지!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알 수 없는 외로움이 오버랩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3월 산속 한국 자생난

도대체 그것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그렇게 처참하게 박살내 버릴 수가 있을까?
그렇군. 내 분신이라는 것. 그 것 보다 큰 죄가 없었겠군. 분노한 순간 제일 먼저 아내 눈에 띄었던 게 재수 옴 붙은 것 이지… (https://blog.naver.com/value_codi/221183747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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