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의 겨울 애상(27)

0
332

인플란트와 어머니의 팥호박죽(2화)

3.돌팔이 정판식씨 찾아 3시간

그렇게 교련복 입은 고등학생과 매형 예비군복 빌려 입은 점수는  어머니 틀니 값을 되찾기 위해 추운 겨울 아침 집을 나섰다. 나는 어머니가 점심으로 싸준 고구마를 코트 오른 쪽 주머니에 찔러 넣고는 종이에 적어온 ‘두동’ 마을에 대한 대강의 약도와 주소를 점수에게 보여줬다.

“야, 점수야. 너 이 동네 좀 아냐? 지금 우리가 찾아갈 곳인데.”

“이리 줘봐. 좀 보자. 음, 나도 가보진 않았는데..

그래도 대충 가는 길은 알 것 같아. 무슨 일인데 그래?”

“우리 엄마가 정판식이라는 사람 한테 틀니를 하셨는데, 사기 당한 것 같다. 그 돈을 찾으러 가는 거야. 정판식이가 여기 산데.”

내 얘기를 듣고 난 점수의 표정이 심각해 졌다. 그리고는 내가 건넨 쪽지를 보며 천천히 걷던 걸음을 뚝 멈췄다. 난 그가 뒤돌아서 집으로 가버릴 까봐 걱정 됐다. 그를 안심 시킬 필요가 있었다. 녀석이 생각보다 뒤가 무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 고추널이 by ValueCode@

점수는 등치는 컸지만 유순하고 말이 없는 편 이었다. 누가 싫은 소릴 해도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기만 했는데, 그 모습이 꼭 누런 황소가 웃는 것 같았다. 점수는 힘도 쎘고 보기 보단 동작도 민첩했다.

중학교 여름 방학 때였다. 늦여름 뙤약볕에 거의 말린 고추를 지나 가는 소낙비에 쑥대밭으로 당할 뻔 한 적이 이었다. 이 때 어디선가 점수가 슈퍼맨처럼 날아왔다. 점수는 멍석에 넓게 펼쳐 널어 둔 고추를 멍석 가운데 한 곳으로 던져 모으더니, 비닐 포대 입을 크게 벌리고는 정신 없이 퍼 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야 임마, 뭐하고 있어. 저기 마당에 떨어져 있는 고추를 빨리 주어 담아”하고 소리치면서 자기는 멍석을 둘둘 말아 ‘으샤’하는 기압과 함께 한 순간에 어깨에 들쳐 메더니, 사정 없이 뛰어서 허간 바닥에 훽 집어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손바닥으로 쓰윽 닦는 것이었다.

난 점수의 현란한 일솜씨에 감탄하면서 점수의 순간적인 행동에 속으로만 ‘어,어 점수야! 그 손으로 얼굴 만지면 안되 임마…’라고 외칠 수 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안 있어 고추 담던 손으로 이마의 땀을 닦은 점수는 고추의 매운 성분이 땀과 함께 눈으로 흘러 내리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눈을 찔끔 거리며 눈물을 흘리면서도 “야, 지금 곧 소낙비가 쏟아질 판인데 그렇게 째깐한 그릇을 가지고 와서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으면 어찐다냐?”하며 이빨을 드러내고 활짝 웃는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점수야, 너는 그냥 내 등 뒤에 버티고 있기만 하면 돼야.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텐께 너는 그냥 내 등 뒤에서 보고만 있으면 되는 거야. 다른 건 아무것도 신경 쓰지마. 싸움도 내가 하고 돈 받는 것도 내가 할테니까 너는 그냥 나랑 같이 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알았쥐?”

실제로 점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편이 오히려 그 날의 전투에 도움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점수가 입을 벌려 뭔 가를 말하거나 상대방이 하는 무슨 말에 황소처럼 웃기라도 한다면 그런 행동은 우리의 전력을 약화 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면 상대는 우리의 순진한 면을 약점 삼아 물고 늘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네 앞산을 오르고 보동재를 넘고 또 이름 모를 산을 지나면서 눈 덮힌 산길을 한 시간 도 넘게 걸어야 했다. 그렇게 반대쪽에서 산을 내려오는 비탈에 예전 화전민이 일구었을 눈 쌓인 밭을 가로질러 내려오니 왼쪽에서 깊은 산 자락을 타고 내려와 유속이 느려 지는 곳에 자갈과 모래가 넓게 펼쳐져 있을 하구엔 눈 쌓인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는 하천을 왼 편에 두고 하천 하류를 향해 어머니가 싸준 찐 고구마로 시장기를 달래며 또 한 시간 넘게 인적 드문 길을 추위와 싸워가며 터벅터벅 걸어야 했다. 큰 형이 버리고 간 군화를 신 고온 것이 후회가 됐다. 방한에 도움이 안되는 교련복을 입고 온 것이 그렇게 후회 될 수 없었다.

군화는 낡고 군데 군데 헤진 데다가 산길을 헤치고 오면서 눈이 들어가 양말은 젖어서 발은 얼었고, ‘으드드드’ 위아래 이빨은 쉴 틈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피부는 멍든 것처럼 시퍼렇게 변했고 투들투들 닭살까지 돋아 있었다.

눈덮힌 산 길 by ValueCode@

그렇게 한 참을 내려 오니 우리 앞에는 잘 닦인 신작로가 가로로 지나가고 있었다. 간간히 택시가 지나가는 신작로를 따라 또 한 시간을 넘게 걸어서 우리는 드디어 ‘두동’ 마을 어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침 10시 경 집을 나서 3시간 넘게 걸어서 두동 마을에 겨우 도착한 우리를 처음 맞이한 것은 마을 입구에  떡허니 버티고 서 있는 느티나무들이었다.

마을 입구 길 양쪽에 버티고 서있는 수령 수 백년은 족히 넘었을 이 느티나무들은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마을이 유서깊고, 정판식씨 또한 뼈대 있는 가문 후손이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마을 입구에 늘어선 느티나무는 한 여름에는 하늘을 덮어 터널을 만들었을 테지만, 지금은 앙상한 나뭇가지들 만이 추위에 떨고 있었다.

이 길을 따라 한 참을 더 올라 가니 군데 군데 뱀들이 똬리를 틀고 동면하고 있는 것 같은 타원형의 마을이 나왔다.

마을이 시작되는 맨 아래 쪽 널찍한 곳에 둘레가 어른 두 사람이 팔을 벌려야 겨우 잡힐 것 같은 큰 고목 느티나무 한 그루가 시멘트 벽으로 삥 둘러 쳐진 화단 안에 갇힌채 오도 가도 못하고 추위에 떨고 있었다.

고목 느티나무 바로 옆에는 시계 방향으로 노.지.덕.체라는 녹색 페인트 글씨가 박혀 있는 어른 키 높이 시멘트 구조물이 있었다. 마치 ‘이 동네는 새마을운동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습니다’ 하고 자랑하는 듯 보여 바로 옆에서 덜덜 떨며 죽어가고 있는 고목 느티나무와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다.

그 뒤로는 그 시절 아버지들이 즐겨 쓰고 다니던 새마을운동 마크가 누런 페인트 담벼락 상단 중앙에 녹색으로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 바로 아래로는 상하로 긴 직사각형 문틀에 양철판을 덧대고 가장자리에 삥 둘러 촘촘하게 못을 박아 만든 쌍둥이 여닫이 문이 있었다.

이 양철 쌍둥이 여닫이 문은 아래쪽 아귀가 맞지 안아서 크게 틈새가 나 있었다. 이 틈새로 동네 어르신들의 소곤소곤 담소 나누는 소리, 왁자지껄 박장대소 소리가 새나오고 있었다. 나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선 양철문을 힘차게 열어 재꼈다.

어라, 쌍둥이 문은 바로 열리지 않고 서로 붙어서 잡아당기는 쪽으로 활처럼 휘어진 채 시간차를 두고 열렸다. 양철문을 힘차게 열고 짠 하고 나타나 일 순간에 좌중의 시선을 잡아 끌어 뻘쭘한 신고식을 멋지게 처리하려던 처음 계획은 완전히 헝클어 졌다. 오히려 오랫 동안 준비된 연극을 보여 주지 못하고 준비만 하고 있는 김빠진 공연이 돼 버렸다.

“안녕하세요 어르신들? 정판식씨 집을 좀 찾을려고 합니다? 저는 앞동네 OOO에서 온 학생인데, 저희 어머니 이빨이 좀 아파서요?”

“누구라고? ‘아따 판식이라고 안허요.’ 아, 판식이. 나가서 바로 뒷집이여. 빨간 기와집. 근디 지금은 판식이가 집에 없을 것인디. 아까 오전에 싸이카타고 읍내 나가던디!”

“아, 그래요. 그럼 집에가서 좀 기다리죠, 뭐. 어르신들 감사합니다.”

내가 마을 회관에서 정판식씨 정보를 확보하는 동안 점수는 말 한마디 없이 내 등 뒤에 버티고 서있기만 했다. 마을 회관에서 나오니 택시 한 대가 손님을 내려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난 호기심이 발동했다. 택시 옆으로 다가가 조수석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조수석 창문이 스르륵 아래로 내려갔다. 초로의 기사가 운전석에 앉은 채로 고개를 오른 쪽으로 돌리더니 나를 위 아래로 쭈욱 훑었다.

“저기 아져씨, 왜 안나가고 이러고 계시는 거에요?”

“빈 택시로 나가기 뭐해서 읍내 나갈 손님이 있나 해서 좀 기다려 보는 겨. 우째 타고 나갈라고?

“아니오. 지금은.”

“얼매나 기다려야 되는디?”

“한시간 정도요.”

“예끼, 그 때까지 우째 기다린다냐?

“아져씨 그럼 혹시, 나중에 전화 하믄 다시 이곳으로 올 수 있나요?”

“그려, 누가 올 지는 몰라도, 쬬기 마을 회관서 OOO택시로 전화하면 보내 줄꺼다.”

눈 쌓인 가로수 길 by ValueCode@

4.정판식씨 노모의 실수

마을 회관서 알려준 대로 정판식씨의 집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눈 덮여 있긴 했지만 군데 군데 베어 나온 빨간 기와 지붕 때문이었다. 마을 중심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아 잘 정돈된 듯 한 담벼락과 처마 끝을 받치고 있는 새로 단 듯한 함석 물받이는 최근 이 집 경제 사정이 좋다것을 말해 주는 듯 했다. 우리는 페인트 냄새 진하게 풍기는 녹색 철 대문을 조용히 밀고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시골 마을 농가 치고는 잘 정돈된 마당이었다. 아침 나절에 내린 눈은 마당 한 쪽으로 치워져 있었다. 키 작은 애라도 쉽게 오를 수 있는 높이의 토방에는 높이가 한 뼘 정도 되는 화강암 댓돌이 차갑게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위에는 세련된 여성용 털신 한 켤레와 분홍색 어린이 부츠 한 켤레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겨울 해는 이미 산을 넘어간 건 지 보이지 않았다. 시골 마을 어느 집에나 있을 법한 낯선 방문객을 맞는 황구 한 마리 없어 집안은 조용하다 못해 쓸쓸하기까지 했다. 주위에 쌓인 잿빛 눈, 힌 눈 그리고 지붕 위의 군데 군데 베어져 나온 빨강 색 기와, 댓돌위 까만 털신과 분홍색 부츠 만이 그 나마 이 집이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는 것 들이었다.

“계십니까? 안계세요?”

‘스르륵’ 안방 유리 미닫이 문이 가로로 부드럽게 열렸다.

“밖에, 뉘시요?”

점잖은 목소리의 주인공이 어린 여자 아이를 안고서 나왔다. 찌지도 마르지도 않은 체형에 피부색이 뽀얀 것으로 보아 고된 농사에 시달린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침착한 행동과 부드러운 음성에서 느껴지는 고상함은 이런 시골 마을에는 다소 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죠기 OOO이라는 동네서 왔습니다. OO아짐 소개로 저희 어머니가 이번에 틀니를 했는데, 그게 좀 문제가 생겨서 정판식씨를 만나러왔습니다.”

그녀는 틀니에 문제가 생겨 정판식씨를 만나러 왔다는 말에 지금까지의 침착한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갑자기 안고 있던 아이를 마룻바닥에 급하게 내려놓고는 토방으로 뛰어내려 신발도 신는 둥 마는 둥, 처마 밑으로 허둥 지둥 내려와 내 손목을 끌어 당겼다.  “아이고, 추운데 그 먼곳서 여기까지 우째 왔소? 어서 올라 오시오. 날이라도 좀 빼난 해지믄 오시든 허제 그랬소?”

내가 찾는 정판식씨 어머니가 분명했다. 그리고 아까 안고 있던 그 어린 여자 아이는 정판식씨 딸인 것이고.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아주머니의 친절한 행동이 좀 과하다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집 하고 조금이라도 피가 섞인 일가 친척도 아니고 자주 왕래하는 이웃 사촌도 아닌데 말이다.

정판식씨의 어머니는 우리가 찾아 온 목적이 유쾌한 일이 아니라는 것 쯤은 곧 알아차렸을 텐데도 우리들을 한사코 방안으로 들어오라고 이끌었고, 그 때 마다 ‘발이 더러워서, 금방 갈텐데요’ 하며 우리는 마루 끝에 앉아서 기다릴 것을 고집했다. 전투력이 상실되면 안됐으니까.

우리가 마루에서 기다리는 동안 정판식씨 어머니는 싱건지에 찐고구마도 내오셨고, 광 항아리 묻어 둔 홍시도 꺼내왔다. 고구마 한 개로 점심을 때우고 3시간을 걸어 적진을 찾아 온 우리는 목적도 잊어 버리고 적의 수장이 내오는 음식을 개눈 감추듯이 후딱 해치워 버리고는 빈 접시만을 소반 위에 덩그러니 남겨 놓곤 했다.

정판식씨 집에 들어와 추운 마루 끝에서 기다린 지도 한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배가 채워지자 나도  점수도 피곤해 하품을 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오지 않는 정판식씨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고 계속 마루 끝에 앉아 있기도 뭐 해서 우리는 1차 베이스 캠프인 마을 회관 입구로 철수할 생각으로 막 일어 서려는 참이었다. 정판식씨 엄머니가 쭈뼛쭈뼛 다가 오더니 그러신다.

“학상, 어머니 틀니가 맘에 안들어 속상한 줄은 알겠는데 좀 살살 하소. 짜 애비가 감옥소 갔다 온지 1년도 채 안됐소. 그 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어서 피해자가 신고를 하는 바람에… 그 통에 짜 애미는 집 나가부렀고, 내가 여적 껏 저 불쌍한 것을 키우고 안 있소. 감옥소 나와서 묵고 살라고 애쓰다 몇칠 전에는 싸이카타고 밤 늦게 오다 넘어져 얼굴이 영 못쓰게 됐단 말이오. 쫌 있으면 우리 판식이 올것 같은디, 저 불쌍한 것을 봐서라도 서로 좋게 해결 보씨오.”

“예, 어머니 알겠습니다. 저희는 이만 밖에 나가 기다렸다가, 아드님하고 애기 잘하고 돌아가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집에 전화기 있습니까“

“전화기 있지. 쪼기 안방에 근데 어째 그러요?.”

“택시 좀 부를려구요. 날도 어두워 졌고 돌아갈 차도 없을 것 같아서요. 읍내 OOO택시에 전화 좀 해주세요. 너무 빨리 오지는 말고 30분 쯤 후에 도착할 수 있게 만 해주세요. 학생 2사람이요.”

“알것소. 지금 바로 전화 넣을 텐께 꺽정말고 죠기 마을 회관 앞이서 지다리시오.”(계속)

#ValueCode.co.kr #오스카하우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