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의 겨울 애상(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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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정판식씨와 한판

여전히 아무 말 없던 점수는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정판식씨 집을 나설 때는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을 회관 앞에서 한 참을 더 기다렸다. 겨울 해는 이미 온데 간데 없고 사위는 잿빛으로 서서히 덮히고 있었다. 마을 여기 저기 굴뚝에선 저녁 밥짓는 연기가 모락 모락 피어 오르고 있었다.

‘오늘 이 자리가 어머니 틀니를 망친 돌팔이 정판식씨를 찾아나선 것이 아니고 친구집에 놀러왔다 돌아가는 해질녘 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풍경은 선비의 수묵화나 단원의 풍속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얼마나 아름답고 정감 넘치는 우리네 고향 풍경일까’ 하는 상념에 빠져 있던 순간 이었다. 지금껏 아무 말 없이 옆에서 지켜 보고만 있던 점수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급하게 소리쳤다.

“야야, 싸이카다. 싸이카.”

눈속의 오토바이 by ValueCodoe@

저 멀리 콩알만 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난 안경을 쓰고 있었고 해질 무렵이라 잘 안보였지만, 시력이 좋았던 점수는 쪼그맣게 움직이는 물체가 오토바이라는 사실을 금 방 알아차리고 내게 알려준 것이었다.

점수가 그 날 입밖으로 내 뱉은 첫 마디였지만 그 말이 내겐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처음 콩알만 했던 움직이는 물체는 낮은 산자락의 곡면을 따라 만들어진 신작로의 굴곡진 곳으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를 반복할 때 만다 탁구공이 됐다가 야구공이 됐다가 럭비공 만하게 점 점 더 커져서 나타났다.

이제는 내 눈에도 움직이는 물체가 오토바이라는 것이 확실하게 보였다. 난 왼 팔을 각 지게 꺽어 가슴께 까지 올리고 손목에 채워진 카시오 전자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오후 5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정판식씨 어머니가 택시 회사에 전화한 지 거의 30분이 다 돼 가고 있었던 것이다.

30분 후에 오기로 한 택시가 어디 쯤 오고 있을 지 가늠할 수가 없어 오토바이의 모습이 점점 커질 수록 내 마은 초조해지고 불안해져 터져버리기 일보 직전의 고무 풍선 같았다.

나는 마을 회관 앞 신작로 한 가운데로 성큼 나가서 교련복 위에 결쳐 입은 코트 주머니에 양손을 꽂은 채, 투수가 볼을 던지기 직전 마운드를고르듯 큰 형의 낡은 군화 신은 오른 발로 얼어붙은 길바닥을 차서 깊은 흔적을 만들어 미끄러지지 않게 단단히 자리 잡고 서있었다.

그런 자세로 잠시 동안 정면에서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응시하고 있다가 두팔을 코트 주머니에서 힘차게 빼서 머리 위로 크게 엑스자를 그어 다가오는 오토바이를 막아 세웠다. 그리고 난 입속으로 ‘적이 정신 차리전에 약점을 집요하게 공격해야 한다. 숨통을 끊어놔야 한다.’를 입속으로 반복했다.

‘끼~익’ 오토바이는 급제동하며 얼어 붙은 빙판길에서 지그 재그로 흔들리며 미끄러졌다. 결국 오토바이는 신작로 가장자리로 가서 끝내는 쓰러졌다.  오토바이 주인은 오토바이에서 빠져나와 외발로 통통 몇 번 튀어 오르면서 길 한 가운데로 나왔다. 얼굴 표정이 이그러졌다. 온 몸의 근육이 경련이라도 일으킨 것일까.

신작로 가장자리로 내동댕이 쳐진 오토바이에서는 뒷바퀴가 사정없이 헛바퀴 돌고 있었다. 오토바이 주인은 오토바이를 길가에 그대로 내동댕이쳐 두고는 나를 향해 몇 발짝 다가서며 육두문자를 날렸다.

“야, 미친 세캬. 너 뭐야? 너 뒈지고 싶어 환장했어?”

그가 무슨 쌍욕을 하던 난 그가 정판식이라는 것 만 확인하면 됐다. 우선은 그가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는 것이 정판식일 조건 한 가지를 충족시켰다. 하지만 한 가지 더 결정적 증거를 확인해야했다. 그의 얼굴에 난 상처를 확인해야했다. 그의 노모가 확인해준 몇일전 사이카사고로 얼굴을 쓸켰다고 했다.

하지만 난 그의 얼굴에서 상처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다만 오른 뺨에 깊은 흉터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오래전에 생긴 깊은 칼자국 같은 것이었다. 날이 어두어져서 화실하진 않았지만 그의 왼쪽 관자놀이 주변에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있는 듯도 보였다.

오토바이 주인이 지금까지 찾고 있었던 정판식씨임이 확인되자 나는 심장이 쿵쿵 하기 시작했고 두 다리에서는 힘이 확 풀려 그자리에 주져 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정판식씨는 생각 보다 키가 컸고 등치가 좋았다. 얼굴 생김새에서 아까 낮에 만났던 빨간 기와집 주인의 귀티 났던 분위기와는 전혀 달랐다.

어둑 어둑한 상황에서도 오토바이를 타고 온사람의 길쭉한 얼굴형과 광대뼈가 툭 튀어 나온 까무잡잡한 피부에서 도저히 낮에 본 빨간 기와집 주인의 아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얼마 전 형무소에서 나왔다는 것과 얼굴에 난 흉터와 상처로 보면 정판식씨가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의 외모에서 풍기는 위압감에 약간 주눅이 들었지만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라는 절박감에 단전에 기를 모으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또박또박 논리적으로 따지듯 말하려 애쓰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정판식씨? 나는 쪼기, OO마을 사는 OOO입니다. 당신이, 우리 어머니한테 해준 틀니가 잘못돼서 지금, 돈 돌려 받으러 왔습니다.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현금 15만원을 돌려주지 않으면, 당장 읍내 경찰서로 달려가, 신고해 버리겠습니다.”

정판식씨는 이런 나의 협박에 헛웃음과 함께 하늘을 한 번 쳐다보고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나를 째려 보았다. 하지만 어이 없어 하면서도 경찰서에 신고하겠다는 말에 행동이 멈칫했고 얼굴 표정에선 약간 긴장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태도와 얼굴 표정에선 더 이상의 살기를 느낄 수 없었고 더군다나 낮동안의 그의 노모의 행동과 그의 어린 딸에 대한 생각으로 어느 순간부터 나의 태도는 부드러운 읍소 모드로 바뀌어 있었다.

“알다시피 저희 엄마와 OO아짐은 형제처럼 지내는 사이가 아닙니까? 아재가 저희 엄마한테 그러시면 안되죠. 그리고 그 돈은 우리 큰 형이 싸우디에서 힘들게 벌어서 어머니 틀니 해드리겠다고 보낸 돈이란 말입니다. 큰 형이 곧 돌아올텐데, 이 사실을 알면 가만히 있지 안을 꺼예요. 혹시 OO아짐으로부터 우리 큰 형 얘기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승질나면 물불 안가립니다.”

이렇게 구라 치며 시간을 끌고 있는데, 정판식씨 뒤로 택시 한 대가 들어 오는 게 보였다. 내가 부탁해 정만식씨 어머니가 부른 그 택시가 들어오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게는 백만 원군이나 다름 없었다. 택시의 출현으로 싸움의 판세가 내쪽으로 확실하게 기울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제 어쩔랍니까? 저희들은 저 택시 타고 지금 읍내로 갈겁니다. 점수야, 우선 넌 저 택시에 타고 있어. 그리고 기사 아져씨게 10분만 여기서 기달려 달라고 부탁해?”

정판식씨는 고개를 돌려 진짜 택시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터벅 터벅 쓰러져 있는 오토바이를 향해 걸어가는 것이었다. 마지못해 기어가는 목소리로 한 마디를 내 뱉었다. 자포자기한 그의 심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깐 여기서 잠깐 기다려.”

“딴 수작 벌이면 안됩니다. 전 여기서 딱 10분만 기다립니다.”

“아, 알았다니니깐. 그 자식 정말 짜증나게 하네. 확 퉤~”

정판식씨는 길바닥에 가래침을 확 내 뱉으며 오토바이를 일으켜 세우더니 오른 발에 강하게 힘을 가해 시동을 걸었다.

눈 속에 갇힌 집 by ValueCode@

어른 걸음으로 걸어서 5분이면 충분한 거리를 오토바이를 타고도 한참을 올라가는 듯 했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가늘고 길게 늘어지는 것이 좀 이상하게 여겨졌지만 우리는 그대로 마을 회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정판식씨는 10분이 넘도록 돌아오질 않았다.

점점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정판식씨가 안오면 정말 대책이 없었다. 수중엔 땡전 한푼 없는 거지 신세였다. 정판식씨가 만약 돌아 오지 않는다면 우리는 택시 기사 아져씨께 멱살 잡혀 경찰서에 끌려갈 판이었다.

난 다른 방법이 없었다. 무조건 정판식씨 집으로 냅다 뛰었다. 그리고 대문을 거칠게 밀치고 마당 안으로 들어갔다. 아까보다 더 조용했다. 이상했다. 정판식씨가 돌아왔다면 오토바이가 마당 어딘가에 있어야 했고 방안엔 인기척이라도 있어야 했다.

“계세요. 실례합니다. 아까 찾아왔었던 학생입니다.”

댓돌 위로 시선이 갔다. 신발이 하나도 없었다. 그렇다면 불만 켜진 채 방안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갑자기 기분이 이상해졌다. 귀신한테 홀린 기분이 들었다. 무서운 기분에등골이 오싹해졌다. 빨리 그 집을 빠져나와야만 했다. 난 택시가 있는 마을 회관 앞으로 뛰어서 되돌아 왔다.

내가 마을 회관 앞 택시에 막 도착해 숨을 헐떡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다시 오토바이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마을 깊은 곳에서 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아까 그 정만식씨와 노모가 오토바이를 타고 우리 앞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정만식씨는 오토바이 엔진을 멈추지 않은 채 두 발로 언 땅을 밟고서서 오토바이를 내 앞에 멈취세웠다. 정만식씨 엄머니는 오토바이 뒷자리에서 조심 조심 내렸다. 그리고 정만식씨는 가죽 잠바 안쪽 주머니에서 투툼한 흰 봉투를 꺼내더니 내게 툭 던졌다.

난 독사가 기다렸다 뛰어오른 개구리를 혀로 낼름 낚아 채듯이 정만식씨가 던진 그 힌 봉투를 잽싸게 낚아 챘다. 묵직한 느낌이었다. 촉감 만으로도 현금 다발이 들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내가 정만식씨가 던져준 봉투안을 확인하기 위해 봉투입구를 열고 지폐두께를 대충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순간 정만식씨 어머니가 내 곁으로 와서 내 코트 주머니에 뭔가를 꽂아 넣고는 급히 사라는 것이었다.

“학상들 조심히 가씨요잉. 난 손녀가 울어싼게 싸게 들어가 봐야 쓰것소. ‘만식아’ 너도 학상들 탁시 태워 보내드리고 싸게 들어가 저녁 묵자.” 하시며 뒤도 안돌아보고 집을향해 사라져버렸다.

“예, 큰 어머니, 먼저 올라가 계시씨요잉. 곧 갈텐께요.”

6. 밝혀진 비밀

정판식인줄 알았던 사람이 그의 사촌 동생 정만식이었다. 그런데, 정만식은 내가 ‘정판식씨냐?’고 물었을 때 아무 말 않고 있다가 경찰서에 신고한다니까 순순히 내 요구에 응했다. 그리고 마을 회관에서 가까운 큰 어머니집이 아니고 자신의 집에서 뭔가를 상의하고 현금을 가지고 내려왔다.

도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목적은 달성했지 않은가! 거기다 정만식씨 큰 어머니가 챙겨준 택시비까지 받아서 지금 집으로 금의 환향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피곤하다. 빨리 집에 돌아가 어머니께 오늘의 일을 소상히 말씀드리고 따뜻한 된장국에 밥말아 먹고서 아랫목에 등 지지며 눕고 싶을 뿐이다.

하루 종일 추운 곳에 있다 택시를 타니 금새 피곤이 몰려왔던 모양이다. 점수는 택시 뒷좌석에서 이미 골아 떨어져 자고 있었다. 나도 택시 조수석에 타자 마자 등받이를 뒤로 눞히고 머리를 뒤로 젖힌 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마을을 빠져 나온 택시는 한적한 2차선 도로위를 한참 동안 미끄러지 듯 달리고 있었다. 난 모든 것을 잠시 접어 두고서 막 선잠이 들려는 순간이었다. 그 때 택시 기사가 말을 걸어왔다.

“학상들 어디로 간다고 혔지? 무슨 마을이라고 혔던가?”

“아, 예에. OO리 OO마을이요”

“근데, 이동넨 뭔일로 왔당가? 만식이네와는 친척인가?”

“아니오, 일이 좀 있었어요.”

설명하면 길어질 것 같아 난 대충 얼버무리고 말았다.

“내가 알기론, 저 만식이네 집이 원래는 이 근 방에서 대대로 방구 좀 끼고 살던 집안이었어. 근데 아주 오래 전에 막내 고모땜시 집안이 폭삭 망해부렀제.‘

택시 기사의 설명을 요약하면 이렇다.

막내 고모가 부잣집 막내따로 태어나 어려움 모르고 자랐고, 커서는 소위 말하는 껌좀 씹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다 술먹고 외박도 하는 수준으로까지 발전했다는 것이었다.

정판식씨 아버지는 막내 동생을 세 차례나 전학시켜가며 고등학교를 마쳐주고자 주고자 했으나, 막내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광주 어느 다방에 있는 것을 큰 오빠가 잡아다 놓으면 또 몇 달 있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어디 술집에 있다 해서 가서 잡아다 놓고 머리를 빡빡 밀어버리고 자기방에 가둬 놓고 위협도 하고 달래기도 했느데 도저히 마음을 잡게 만들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광주 어딘가 술집에 잡혀있는 것을 찾아 집에 데리고 왔는데 몇 달뒤 막내 동생이 임신한 사실을 알게됐다.

자초 지종을 확인해 보니 동네 양아치들한테 성폭행을 당하고 술집에 넘겨졌다는 사실까지 알고선 눈이 뒤집힌 큰 오빠는 그 술집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판식이 아버지는 동네 양아치들한테 걸려 죽을 만큼 얻어 맞아 병원에 입원하게 됐고, 이 사실을 알게된 당시 전남대 치대 재학중 이었던 아들 판식이와 특전사를 제대하고 경찰시험 준비중 이었던 조카 만식이가 그 양아치들 몇 놈을 잡아다 반 죽이는 과정에서 얼굴에 큰 상처를 입었고 폭행죄로 경찰과 검찰 조사를 받게 됐다는 것이다.

판식이가 자신의 아버지때문에 일어난 일이니 사촌동생은 죄가 없다고 주장해 혼자서 죄를 뒤집어 쓰고 폭력전과를 달고 학교에서 제적당해 고향으로 내려와 치과재료상을 하다 시골 할머니들의 틀니를 해주곤 했는데, 몇 해전 잘못돼 징역살고 나온 지 1년 정도 됐다는 것이다. 정판식씨는 두 번이나 별을 달게 됐고 생계수단이 막막하게된 것이다.

그래서 사촌 동생 만식씨는 사촌형 인생이 안풀린 것이 자기 책임도 있고 해서 전과가 없는 자신이 나서서 치과재료상 사업을 하면서 형을 대신해서 틀니 본을 뜨기도 하고 완성품 배달도 한다는 것이다.

택시 기사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는 듯 했다. 그러면 그 막내 고모란 분이 누구란 말인가? 고모라고 해봐야 우리 동네 사는 OO아짐밖에 없잖은가?

7. 어머니의 팥호박죽

어머니의 팥호박죽 by ValueCode@

택시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저녁 7시가 넘었다. 아침에 집 떠나 저녁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며 어머니는 초조함과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나름 분주하게 보내신 것 같다.

늙은 호박을 쪼개 씨를 빼고, 껍질을 깍아 미리 준비해 뒀을 것이다. 그래도 시간은 더디 가기만 했고 호박죽 쑬 준비는 어머니에겐 너무나 간단한 것이어서 1시간이면 족했을터 초조한 시간을 보낼 다른 소일꺼리가 필요했을 것이다.

때 마침 틀니를 소개해준 OO떡이 찾아왔을것이다. 두동 마을에서 일어난 소식을 친정 올케로부터 전화로 전해 듣고 어머니께 달려와 처음엔 화를 냈다가 그리고 해명을 했다가 나중엔 자신은발뺌하며 사정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받은 소개비를 다시 돌려 줄테니 자신은 관계가 없다고 내게 말해달라는 소리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거마비로 받은 돈 3만원을 다시 돌려주고 갔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쉬이 돌아 오지 않는 어린 아들에 대한 걱정과 시름을 달래기위한 나름의 방법으로 다소 시간이 걸리는 팥호박죽을 골랐던 것일까?

광 항아리에 보관해 둔 빨간 팥알을 넉넉히 꺼내 물에 불린 후 한 소꿈 삶아 건져 두고, 깍아둔 늙은 호박은 가마솥에 넣고 푹 삶았다. 이제 밀가루 반죽만 이겨 놓으면 금방 이라도 팥 호박죽을 한 솥 끌여낼 수 있게 준비가 다됐다.

오매 불망 기다리던 아치에 집을 출발한 아들이 택시타고 무사 귀환한 것만으로도 맘이 놓이셨는지 어머니는 다녀 온 얘기의 결과에 대해선 그다지 궁금해 하지 않으셨다. 단지 추운 겨울에 소식 없는 아들이 무사히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 하는 눈치였다.

“오메, 뭣 하느라고 지금까지 있었냐? 안준다믄 그냥 올 일이제잉. 애미 애간장 다 녹것다. 빨리 씻고 들어가 저녁 묵자.”

나는 개선 장군 이라도 되는 양 어머니가 떠다 주시는 팥호박죽을 넙죽 넙죽 몇릇 째 받아 먹고서 배가 빵빵하게 채워지자 그제서야 어머니가 한 쪽에서 웅크리고 앉아서 팥호박죽을 호호 불어가며 외롭게 드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틀니도 없는 잇몸만으로 혼자서 조용히 팥호박죽을 드시고 계시는 어머니의 외로운 모습… 30년이 지난 지금도 사라지지 않고 내 의식속에 생생히 남아있다.(끝)

#덧글

초면인 내게 그리도 친절하게 대해준 정판식씨 어머니의 심정이야 더 말해서 뭐하겠는가! 자식의 앞날을 망친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위한몸부림이었다는것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자신을 대신해 죄를 뒵집어쓴 형을 위해 이제는 자신이 대신 멍애를 짊어진 정만식씨의 심정도 충분히 이해가 됐기 때문에 정만식씨의 그 후 삶이 잘 풀렸기를 진심으로 바랬을 뿐이다.

아침에 집을 떠나 3시간 걸어 이동한 거리 by ValueCode@

난 택시 안에서 들은 이야기를 30년 훨씬 넘는 동안 누구에게도 감히 털어 놓을 수 없었고  혼자서만 간직하고 있었다. 

이제 이 야기에 관련된 많은 주인공들이 고인이 되셨다. 그 분들이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자 했던 아름다운 마음을 그리워하며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 세대가 지나면 아마 이런 가족에 대한 사랑도 이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ValueCode.co.kr #오스카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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